고대성의 눈빛이 찰나에 반짝이는가 싶더니 장재현의 틈을 보기 위해 노력하였다.

막 죽이려고 몰아붙이기에는 체격 차이가 있어서 고대성이 무조건 밀렸다. 죽이려다가 오히려 죽임을 당할 가능성이 컸다.

포커캐슬 장재현은 자신이 희생할 생각을 하고 있기에 방심하고 덤비면 무조건 죽는다.

그러나 고대성이 한 생각을 장재현이라고 모를 리가 없었다.

그렇게 서로 경계하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VIP층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5층은 모든 게 갖춰져 있었다. 없는 게 없었다.

그때 장재현이 구석에서 노트북을 하나 찾았다. 곧장 노트북을 켜니 그 안에 영상 파일이 하나 존재했다.

“우리를 위해 준비해 둔 영상인가 보네요.”

단서가 나오면 숨기는 고대성과 다르게 장재현은 그대로 같이 공유하였다.

고대성은 장재현이 영상에 집중하고 있을 때 공격하기로 마음먹으며 가위 손잡이를 보이지 않게 잡았다가 그 상태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영상에는 고대성이 원치 않는 방향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처음 영상에서 나왔던 가면을 쓴 남자가 영상 촬영 중이던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이런 말에 과연 속을까?]

[속겠지. 이런 공간에 납치도 했는데 100억이라는 돈을 못 줄까? 하면서 믿을 거야.]

[그럼 자기들끼리 돈 때문에 죽고 죽이고 난리가 나겠네?]

[VIP들이 원하는 게 그런 거니까. 물론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도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되겠지만 말이야.]

장재현은 역시나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대성을 쳐다보았다.

고대성은 예상한 대로 멍한 상태가 되었다. 조금 전까지 장재현을 죽이려고 했던 살기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없었다.

“저, 저게 다 뭐야?”

고대성은 뭔가 잘못된 게 틀림이 없다며 다시 몇 번이나 재생하였다. 그러나 역시 달라지지 않았다.

“이게 뭐냐고!”

고대성은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몇 번을 부정하였으나, 장재현은 냉정하게 현실을 알려주었다.

“우리를 가지고 놀았다고 말해주네요. 특히나 저들에게 놀아난 사람은 고대성 씨 당신이고요.”

장재현은 끔찍한 진실에 눈을 감았다. 이럴 수도 있겠다고 예상했으나, 막상 이런 결말을 보게 되니 씁쓸하였다.

장재현은 혹시나 고대성처럼 어리석은 생각을 할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 노트북을 든 채로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섰다.

그 전에 고대성이 정신을 차리기를 바랐지만, 고대성은 어느새 미친 사람처럼 바닥에 앉아서 웃고 있었다.

눈물까지 흘리며 웃던 고대성은 장재현이 아무리 불러도 그 상태로 계속 있었다.

장재현은 고대성이 충격을 받을 줄은 알았으나, 정신 줄까지 놓을 줄은 몰랐기에 이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정신 차려보라고 몇 번이나 고대성의 뺨을 쳤으나, 고대성은 흐느끼는 웃음소리만 내며 그 자리에서 꿈적도 하지 않았다.

‘결국, 이렇게 미쳐 버리는 건가?’

할 수 없다는 듯이 장재현이 움직이려는데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몸을 살짝 비틀었다. 그런데도 등에 가위가 꽂히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고개를 돌리니, 조금 전까지 실성한 사람처럼 있던 고대성이 맑은 눈동자로 다시 가위를 휘둘렀다.

장재현은 몸을 뒤로 크게 날리며 겨우 피하였으나, 처음에 얼마나 깊게 찔렀던 건지 끔찍한 고통에 앓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고대성은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며 담담하게 장재현을 바라보았다.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야?”

“뭐 하긴? 죽이려는 거지. 역시 쉽지가 않네.”

고대성은 다시 가위를 휘둘렀다. 하지만 남을 공격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장재현은 괜히 지금까지 살아남은 게 아닌지, 가위에 찔렸는데도 몸을 크게 움직여 날아오는 공격을 피했다.

“X발!”

마구잡이로 어설프게 휘두르는 가위를 다 피한 장재현은 고대성이 가위를 더 크게 휘두를 때 반대로 품으로 파고들어 가위를 든 손을 잡아버렸다.

가위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 써서 빼앗기진 않았으나, 가위 들린 손은 여전히 장재현에게 붙잡혀 있어 고대성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일이 이렇게 흘러가지 않기를 바랐기에 입을 악물고 온 힘을 다 썼지만, 역시나 힘으로는 장재현을 당해낼 수 없었다.

“젠장!”

고대성의 손을 꼭 붙잡은 장재현은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아 물었다.

“날 죽이면 당신 죄만 더 추가될 텐데?”

“글쎄 그건 아무것도 몰랐을 때 하는 이야기고, 난 이 층에 대한 정보를 알고 올라온 거거든.”

“정보?”

“이 안에 있는 정보는 모두 거짓이다. 그러니 속지 마라.”

동시에 다시 가위를 든 팔에 힘이 들어갔다. 어떡해서든 장재현을 이 자리에서 제거하고 말겠다는 의지가 온몸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조금 전과 다르게 장재현 쪽으로 가위 끝이 가까워졌다. 등을 너무 깊이 찔린 탓이었다.

점점 힘이 빠지는 장재현의 모습에 고대성은 미친 사람처럼 즐겁게 웃었다. 그의 머릿속엔 온통 100억뿐이었다.

“프하하하! 100억이 코앞……!”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옆구리를 푹 찔러 오는 날카로운 감각에 깜짝 놀라 고대성은 고개를 돌렸다.

“어?”

다른 생존자들이 분노와 혐오가 가득한 얼굴로 고대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대성은 손에 들고 있던 가위를 바닥에 내팽개치고 옆구리에 꽂힌 메스를 보았다.

처음 이상우에게 스스로 보호하라며 주었던 그 메스였다.

고대성은 멍하니 사람들을 쳐다보다가 헛웃음이 나왔다.

‘이상우를 죽일 때부터 왠지 이렇게 흘러갈 것 같았는데.’

하지만 살고 싶어 그 사실을 외면했다. 고대성은 외면의 대가를 결국 이렇게 치르게 되었다.

‘내 목숨을 건 도박은 이렇게 또 실패했네.’

고대성은 천천히 주변이 흐릿해지는 걸 느끼며, 사람들이 장재현을 구하기 위해 움직이는 걸 지켜보았다. 이제 곧 나갈 것 같으니 위선의 가면을 다시 쓸 때가 된 것이다.

‘역겨워 죽겠네.’

고대성은 저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어떻게 보면 저들은 고대성으로 인해 여기까지 온 사람들이다. 저들에게 있어 고대성은 오히려 생명의 은인이었다.

‘그리고 그게 이제는 저놈들의 발목을 잡겠지.’

고대성은 자신으로 인해 불행해질 저들을 떠올리며 행복해하였다. 이런 식으로 죽는 건 고통스러웠으나, 이렇게 죽는 자신보다 더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 그들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인지 이 죽음이 싫지는 않네.’

고대성은 그렇게 앞날을 예견하며 소리를 내서 웃다가 눈을 감았다. 이것이 고대성이 살아 있을 때의 마지막 기억이었다.